520 | |
▼a 땀과 자유로 범벅이 되게 써라”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장미의 이름』까지 우리 시대 최고의 글쟁이 이윤기가 남긴 집필 노트 “이윤기에게서 우리는 자주 언어의 원형이라 느끼는 어떤 기운을 만나게 된다.”_황현산(문학평론가) “정교하고 섬세하지만, 살아 펄떡이는 말에 대한 집착. 이 책은 그것을 다시 일깨운다.”_이다희(번역가)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와 동일시하며 살아 펄떡이는 말에 유난히 집착했던 언어 천재 이윤기. 서양 언어와 문화에 대한 독보적인 전문가. 그의 이름을 딴 ‘이윤기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말을 가장 생기 있고 다채롭게 쓰는 작가. 200여 편의 책을 옮긴 한국 최고의 번역가. 이 책은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이다. 여기 실린 39편의 에세이에는 첫 문장의 설렘부터 퇴고의 고뇌까지, 그리고 1977년 등단의 두근거림부터 창작과 번역의 세계를 오가던 고민들이 모두 녹아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윤기의 글쓰기 인생을 엿보고, 언어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각이 어떻게 펄펄 살아 있는 문장을 만들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자유의 상징인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생생한 입말을 입히기 위한 그의 고집 있는 투쟁, 자신이 오독하고 오역했던 실패담도 솔직하게 털어 넣는 치열한 자기반성 등 그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윤기가 남긴 이 위대한 유산은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욕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첫 문장의 설렘부터 퇴고의 고뇌까지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기는 것에 대한 39편의 에세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이 아주 짧은 글을 쓸 때도, 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이 두 가지 길 중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언어 규범을 철저히 따를 것인가, 규범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부릴 것인가. 소설 창작부터 번역, 산문, 신화 교양서 집필까지 언어로 안 해 본 것이 없는 작가 이윤기 역시 그 고민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작가 이윤기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그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지성 소설’로 동인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한국 문단에 큰 족적을 남긴 소설가이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장미의 이름』 등 200여 편의 책을 번역하며,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10여 편의 산문집을 펴내며 깊이 있는 통찰과 폭 넓은 교양을 유감없이 발휘한 에세이스트였으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로 200만 명의 독자와 만난 신화 전문가이기도 했다. 글쓰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 해본 언어 천재 이윤기이기에, 그만큼 그의 고민의 양과 고뇌의 깊이는 남달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가 부렸던 언어와 글쓰기의 영역을 조명한 책은 없었다. 이에 작가의 딸이자 후배 번역가이기도 한 이다희 씨는 글쓰기, 번역, 언어 사용에 대한 이윤기의 산문만을 따로 모으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렇게 탄생한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전방위작가로 살았던 그의 유일한 글쓰기 산문집이다. 이윤기가 남긴 ‘쓰고 옮기는 것’에 대한 39편의 에세이는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대한, 깊이 있지만 다정한 철학을 전한다. 죽은 문장을 쓸 텐가 펄펄 살아 있는 문장을 쓸 텐가 이윤기는 매일 밤낮으로 우리말과 씨름했다. 그는 사전을 열어야 말의 역사가 보인다며 사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사전의 말은 박물관의 언어이기 때문에 펄펄 살아 있는 저잣거리의 말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어투 표현과 이중피동 등 사람들이 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말들을 견디지 못하면서도 문법이 파괴된 유행어나 이모티콘 등에는 관대했다. 사전에 없더라도 분명히 쓰이고 있는 말과 특정 지역에서만 쓰이는 말도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건 오로지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말이 생생히 살아서 스스로 맛을 내고 있는가? 그가 옮긴, 수만 킬로미터의 바다를 건너 온 이국의 소설이 우리를 마구 웃기고 울린 것도 모두 이런 그의 자유롭지만 분명한 글쓰기 원칙 때문이다. 살아 있는 언어를 쓰기 위한 이윤기의 노력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할 때의 에피소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기존의 번역본에서 자유의 상징 조르바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걸 참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말이 바로 ‘두목’이다. 이윤기가 중점을 둔 것은 조르바에게 난폭하고 푸짐한 언어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런 고집 때문에 중간 중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조르바가 탄생했을 정도였다. 이윤기의 첫 직장 동료이자 오래된 문우인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이 언어 천재는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어뿐만 아니라 첩보요원들이나 감옥의 죄수들이 쓰는 말까지도 제 고향 말과 만나 낯익은 울림을 얻을 때만 그 언어를 진정한 언어로 여겼다”며 이윤기의 언어가 가지는 생명력을 설명한다. 무조건 재미있게 쓰고 싶다면 반드시 이윤기의 집필 노트를 훔쳐봐야 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글쓰기의 자세한 기술을 가르쳐주기 이전에 예비 글쟁이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의 숨은 열정을 일깨운다. 이 산문집은 한 천재 작가가 창작을 하고 번역을 할 때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비밀의 집필 노트와 다름없다. 조르바에게 살아있는 입말을 입혔기에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조르바의 춤이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 글들을 통해 예비 글쟁이들은 나만의 언어로 누구를 춤추게 하고 싶다는 의욕에 불타게 된다. 이 집필 노트가 특히 의미가 있는 건 이윤기가 자신의 실패담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한자어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정작 재미없고 죽은 말만 쓰게 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소설에서 어리석은 등장인물은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고, 독자들을 가르치려고만 들었던 초기 소설에 대한 자기반성도 서슴없다. 또 그는『장미의 이름』의 초판 번역에서 저질렀던 수많은 오독과 오역까지도 모두 털어놓는다. 개정판 『장미의 이름』이 번역문학 연감 에서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철저한 자기반성이야말로 좋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드러내는 그이기에 “멋있게 보이고 싶다고 제 생각을 비틀지 말라”거나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는 충고가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이처럼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는 작가 이윤기가 수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가 있다. 이 산문집은 본격적인 창작을 하고 번역을 하려는 예비 글쟁이들은 물론, SNS에서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연애편지로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우리말을 쓰면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