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반 세기 동안의 침묵  / 이토 다카시 ... 7
姜德景 '폭행을 당한 후 저는 아랫배가 너무 아파 걷지도 못했습니다' ... 25
姜順愛 '공습이 한창일 때도 위안소 앞에는 군인들이 줄을 섰습니다' ... 37
金卿順 '공습 때도 우리는 그냥 방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 45
金大日 '그들은 조선인과 중국인 위안부 150여명을  두 줄로 세워 놓고  목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 51
金粉先 '같이 연행된 여자들 중에서 저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 58
金順德 '강에는 산더미 같은 사체가 가득 떠 있었습니다' ... 60
金英實 '조선말을 했다는 이유로 '도키코'의 목을 잘랐습니다' ... 62
金學順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 69
盧淸子 '제 자신이 바로 강제연행의 가장 좋은 증거가 아닙니까?' ... 79
文玉洙 '한 사람이 하루 30-70명씩이나 상대를 했습니다' ... 87
文必琪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 98
裵足干 '고향에 돌아와 보니 가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99
沈達連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소학생들을 트럭에 태웠습니다' ... 101
沈美子 '고문당하고 깨어 보니 후쿠오카였습니다' ... 104
尹順萬 '키 큰 사람은 '위안소'로, 키 작은 사람은 '공장'으로 보냈습니다.' ... 119
李京生 '제 배를 째고 태아를 꺼내 죽였습니다' ... 122
李貴粉 '조선인 특공대원과 함께 노래부르고 운 적도 있습니다' ... 129
李福女 '군인들은 그녀들의 목을 잘라 끓인 물을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 138
李順敎 '일본군은 저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상처를 냈습니다' ... 142
李良根 '남편이 죽자 전처의 아이들은 저를 쫓아냈습니다' ... 144
李玉先 '어디에 갔었느냐고 누가 물으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 146
李容女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없는 제게 일본 정부는 보상해야 합니다' ... 148
李容洙 '사죄와 보상이 실현되어 한이 풀리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 149
崔善順 '지금도 일본인을 만나면 '죽여 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듭니다' ... 158
河順女 '다리가 안 좋아졌고, 머리에는 상처가 남았습니다' ... 160
黃錦周 '심하게 반항한다고 발가벗기고 권총으로 음부를 쏘아 죽였습니다' ... 162
匿名 '생리 때에도 헌병의 상대를 맡게 되어,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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