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vol>1
서장 저 높고 아득한 산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 11
'추사체'라는 기괴한 글씨 ... 12
그의 깊고 넓은 학문세계 ... 15
화인으로서의 추사 김정희 ... 18
『완당선생전집』의 오류들 ... 20
'전기'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무관심 ... 22
박규수의 「추사체 변천론」 ... 23
제1장 출생과 가문(1∼24세 : 1786∼1809년)
명문 경주 김씨 월성위 집안 ... 27
예산의 추사고택 ... 30
흩어진 월성위·추사 관계 유품들 ... 34
추사의 출생 설화와 외가 ... 36
추사의 초상과 그 인상 ... 39
입춘첩 신화 ... 40
월성위 집안의 봉사손(奉祀孫) ... 43
겹치는 애·경사 ... 45
스승 박제가 ... 46
어머니와 스승의 타계 ... 48
생원에 합격하고, 부친 따라 연경으로 ... 52
제2장 영광의 북경60일(24∼25세 : 1809∼1810년)
조선 북학파에 대한 후지츠카의 연구 ... 57
후지츠카의 추사 글씨 수집 ... 58
청조 고증학 연구의 제일인자, 추사 김정희 ... 59
북학파 이전의 한·중 문화교류 ... 62
북학의 길을 연 담헌 홍대용 ... 64
홍대용과 엄성·반정균의 만남 ... 67
엄성의 죽음과 홍대용의 추도사 ... 69
4검서의 연경행 ... 71
『사고전서』편찬과 조선 북학파 학자들 ... 72
유득공의 『21도 회고시』 ... 75
정조대왕과 『도서집성』1만 권 구입과정 ... 76
스승 박제가의 당괴(唐魁) ... 79
산해관을 넘으며 ... 82
연경 학자와의 첫 만남, 조강 ... 85
완원과의 만남 ... 87
옹방강과의 만남 ... 90
옹방강의 석묵서루 ... 92
주학년의 (전별도) ... 94
추사의 이별시 ... 98
요동 들판에서 ... 99
제3장 학예의 연찬(25∼34세 : 1810∼1819년)
추사에서 완당으로 ... 103
연경학계와의 교류 ... 105
옹방강의 경학 지도 ... 107
옹수곤 ... 111
섭지선과의 교류 ... 116
섭지선이 보낸 편지 ... 118
연경으로 가는 학자들 : 조용진·신위 ... 120
조인영의 입연 ... 124
진흥왕 순수비 고증 ... 126
무장사비 파편을 찾아서 ... 130
진흥왕릉 고증 ... 135
실사구시설 ... 138
민노행의 실사구시설 후기 ... 140
완당의 벗들 ... 143
황산 김유근 ... 145
동리 김경연에게 보낸 편지 ... 147
초의스님과의 인연 ... 150
완당의 여행과 단양 유람 ... 153
완당의 금강행 : 추가령을 넘으며 ... 154
완당의 금강산 시 ... 156
율봉스님 시적게 ... 157
김경연의 『동리우담』 ... 159
김정희의 『동고문존』 ... 161
완당의 『반포유고습유』서문 ... 163
남한산성 (이위정기) ... 166
송석원의 바위 글씨와 추재 조수삼 ... 167
완당의 「인재설」 ... 170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 ... 171
오석산 화암사의 시경루 ... 176
아암 혜장스님 초상화 ... 180
다산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 ... 184
완당의 장년 글씨 ... 186
장년시절의 행서 대련과 서축 ... 190
제4장 출세와 가화家禍)(34∼50세 : 1819∼1835년)
완당 부자의 출세 ... 199
서자를 위한 『동몽선습』 ... 200
부친 김노경과 동생 명희의 연행 ... 203
오숭량과 매감(梅龕) ... 205
고순과 반증수를 위한 글 ... 209
등전밀과 정조경의 (문복도) ... 213
고구려 성벽 각자와 창림사비 ... 215
완당의 역사지리학과 권돈인의 『허천기적시권』 ... 218
아버지 김노경의 환갑잔치 ... 222
평양 기생 죽향이 ... 223
눌인 조광진 ... 225
다산에게 수선화를 보내며 ... 228
묘향산 보현사 상원암에서 ... 230
(운외몽중)첩 조성기 ... 234
가화 : 김우명의 상소 ... 237
윤상도 옥사 ... 239
김노경의 유배 ... 240
완당의 꽹과리 치는 호소 ... 242
끊임없는 연경학계와의 교류 ... 243
『황청경해』의 입수 경로 ... 245
경전 연구의 '평실정상(平實精詳)' ... 247
유희해의 『해동금석원』 ... 250
황초령비 재발견 시말기 ... 252
중모(仲母) 숙부인 영일 정씨 제문 ... 259
부친 김노경의 해배와 다산 정약용의 서거 ... 260
제5장 완당바람(50∼55세 : 1835∼1840년)
왕희순의 「해외묵연」 ... 265
완당의 청나라 학예계 비판 ... 266
완원의 '북비남첩론' ... 269
청나라 서예의 비학파 ... 271
등석여와 이병수 ... 273
옹방강과 유용의 입고출신 ... 275
완당의 청나라 글씨 모방 ... 276
완당 중년의 전서와 (옥산서원) 현판 ... 286
완당 중년의 편지 글씨와 (반야심경)첩 ... 289
완당의 제자들과 우선 이상적 ... 295
완당 일파의 화가와 우봉 조희룡 ... 297
소치 허련 ... 302
『예림갑을록』 : 묵진 8인 ... 305
『예림갑을록』 : 화루 8인 ... 307
완당의 산수화 ... 313
완당의 난초그림 ... 315
완당의 (난맹첩) ... 317
완당의 원교 『필결』비판 ... 320
완당의 원교 이광사 비판 ... 321
다시 일어나는 윤상도 옥사 ... 325
조인영의 상소문과 완당의 유배 ... 327
제6장 제주도 유배시절(상)(55∼59세 : 1840∼1844년)
위리안치라는 형벌 ... 331
유배지로 가는 길 ... 332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보고 ... 334
대둔사에서 초의를 만나고서 ... 337
제주도로 가는 배 ... 339
제주 화북진에서 ... 342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 345
대정 추사 적거지 유감 ... 347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348
아내가 보내준 음식과 옷 ... 353
부지런히 오가는 하인들 ... 357
양봉신이라는 구인 ... 358
오진사 ... 359
끊임없는 질병 호소 ... 361
의사 오창렬 ... 363
소치의 첫 번째 방문 ... 364
양아들 상무 ... 367
영모암 편액 뒷면의 글에 대한 발문 ... 369
아내의 죽음 ... 371
초의스님의 방문 ... 374
제주목사 이용현과 소치의 두 번째 방문 ... 376
왕성한 독서열 ... 379
법첩의 연구 ... 382
백파스님과의 논쟁 ... 384
「백파 망증 15조」 ... 385
위당 신관호 ... 387
허소치를 신헌에게 소개하며 ... 391
신헌에게 초의를 소개하면서 ... 392
(세한도) 제작과정 ... 393
(세한도) ... 396
(세한도)의 제와 찬 ... 399
(세한도) 그 이후 ... 401
(세한도)의 소장자 이동과정 ... 405
<B>권호명 : < / B>1
서장 저 높고 아득한 산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 11
'추사체'라는 기괴한 글씨 ... 12
그의 깊고 넓은 학문세계 ... 15
화인으로서의 추사 김정희 ... 18
『완당선생전집』의 오류들 ... 20
'전기'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무관심 ... 22
박규수의 「추사체 변천론」 ... 23
제1장 출생과 가문(1∼24세 : 1786∼1809년)
명문 경주 김씨 월성위 집안 ... 27
예산의 추사고택 ... 30
흩어진 월성위·추사 관계 유품들 ... 34
추사의 출생 설화와 외가 ... 36
추사의 초상과 그 인상 ... 39
입춘첩 신화 ... 40
월성위 집안의 봉사손(奉祀孫) ... 43
겹치는 애·경사 ... 45
스승 박제가 ... 46
어머니와 스승의 타계 ... 48
생원에 합격하고, 부친 따라 연경으로 ... 52
제2장 영광의 북경60일(24∼25세 : 1809∼1810년)
조선 북학파에 대한 후지츠카의 연구 ... 57
후지츠카의 추사 글씨 수집 ... 58
청조 고증학 연구의 제일인자, 추사 김정희 ... 59
북학파 이전의 한·중 문화교류 ... 62
북학의 길을 연 담헌 홍대용 ... 64
홍대용과 엄성·반정균의 만남 ... 67
엄성의 죽음과 홍대용의 추도사 ... 69
4검서의 연경행 ... 71
『사고전서』편찬과 조선 북학파 학자들 ... 72
유득공의 『21도 회고시』 ... 75
정조대왕과 『도서집성』1만 권 구입과정 ... 76
스승 박제가의 당괴(唐魁) ... 79
산해관을 넘으며 ... 82
연경 학자와의 첫 만남, 조강 ... 85
완원과의 만남 ... 87
옹방강과의 만남 ... 90
옹방강의 석묵서루 ... 92
주학년의 (전별도) ... 94
추사의 이별시 ... 98
요동 들판에서 ... 99
제3장 학예의 연찬(25∼34세 : 1810∼1819년)
추사에서 완당으로 ... 103
연경학계와의 교류 ... 105
옹방강의 경학 지도 ... 107
옹수곤 ... 111
섭지선과의 교류 ... 116
섭지선이 보낸 편지 ... 118
연경으로 가는 학자들 : 조용진·신위 ... 120
조인영의 입연 ... 124
진흥왕 순수비 고증 ... 126
무장사비 파편을 찾아서 ... 130
진흥왕릉 고증 ... 135
실사구시설 ... 138
민노행의 실사구시설 후기 ... 140
완당의 벗들 ... 143
황산 김유근 ... 145
동리 김경연에게 보낸 편지 ... 147
초의스님과의 인연 ... 150
완당의 여행과 단양 유람 ... 153
완당의 금강행 : 추가령을 넘으며 ... 154
완당의 금강산 시 ... 156
율봉스님 시적게 ... 157
김경연의 『동리우담』 ... 159
김정희의 『동고문존』 ... 161
완당의 『반포유고습유』서문 ... 163
남한산성 (이위정기) ... 166
송석원의 바위 글씨와 추재 조수삼 ... 167
완당의 「인재설」 ... 170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 ... 171
오석산 화암사의 시경루 ... 176
아암 혜장스님 초상화 ... 180
다산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 ... 184
완당의 장년 글씨 ... 186
장년시절의 행서 대련과 서축 ... 190
제4장 출세와 가화家禍)(34∼50세 : 1819∼1835년)
완당 부자의 출세 ... 199
서자를 위한 『동몽선습』 ... 200
부친 김노경과 동생 명희의 연행 ... 203
오숭량과 매감(梅龕) ... 205
고순과 반증수를 위한 글 ... 209
등전밀과 정조경의 (문복도) ... 213
고구려 성벽 각자와 창림사비 ... 215
완당의 역사지리학과 권돈인의 『허천기적시권』 ... 218
아버지 김노경의 환갑잔치 ... 222
평양 기생 죽향이 ... 223
눌인 조광진 ... 225
다산에게 수선화를 보내며 ... 228
묘향산 보현사 상원암에서 ... 230
(운외몽중)첩 조성기 ... 234
가화 : 김우명의 상소 ... 237
윤상도 옥사 ... 239
김노경의 유배 ... 240
완당의 꽹과리 치는 호소 ... 242
끊임없는 연경학계와의 교류 ... 243
『황청경해』의 입수 경로 ... 245
경전 연구의 '평실정상(平實精詳)' ... 247
유희해의 『해동금석원』 ... 250
황초령비 재발견 시말기 ... 252
중모(仲母) 숙부인 영일 정씨 제문 ... 259
부친 김노경의 해배와 다산 정약용의 서거 ... 260
제5장 완당바람(50∼55세 : 1835∼1840년)
왕희순의 「해외묵연」 ... 265
완당의 청나라 학예계 비판 ... 266
완원의 '북비남첩론' ... 269
청나라 서예의 비학파 ... 271
등석여와 이병수 ... 273
옹방강과 유용의 입고출신 ... 275
완당의 청나라 글씨 모방 ... 276
완당 중년의 전서와 (옥산서원) 현판 ... 286
완당 중년의 편지 글씨와 (반야심경)첩 ... 289
완당의 제자들과 우선 이상적 ... 295
완당 일파의 화가와 우봉 조희룡 ... 297
소치 허련 ... 302
『예림갑을록』 : 묵진 8인 ... 305
『예림갑을록』 : 화루 8인 ... 307
완당의 산수화 ... 313
완당의 난초그림 ... 315
완당의 (난맹첩) ... 317
완당의 원교 『필결』비판 ... 320
완당의 원교 이광사 비판 ... 321
다시 일어나는 윤상도 옥사 ... 325
조인영의 상소문과 완당의 유배 ... 327
제6장 제주도 유배시절(상)(55∼59세 : 1840∼1844년)
위리안치라는 형벌 ... 331
유배지로 가는 길 ... 332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보고 ... 334
대둔사에서 초의를 만나고서 ... 337
제주도로 가는 배 ... 339
제주 화북진에서 ... 342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 345
대정 추사 적거지 유감 ... 347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348
아내가 보내준 음식과 옷 ... 353
부지런히 오가는 하인들 ... 357
양봉신이라는 구인 ... 358
오진사 ... 359
끊임없는 질병 호소 ... 361
의사 오창렬 ... 363
소치의 첫 번째 방문 ... 364
양아들 상무 ... 367
영모암 편액 뒷면의 글에 대한 발문 ... 369
아내의 죽음 ... 371
초의스님의 방문 ... 374
제주목사 이용현과 소치의 두 번째 방문 ... 376
왕성한 독서열 ... 379
법첩의 연구 ... 382
백파스님과의 논쟁 ... 384
「백파 망증 15조」 ... 385
위당 신관호 ... 387
허소치를 신헌에게 소개하며 ... 391
신헌에게 초의를 소개하면서 ... 392
(세한도) 제작과정 ... 393
(세한도) ... 396
(세한도)의 제와 찬 ... 399
(세한도) 그 이후 ... 401
(세한도)의 소장자 이동과정 ... 405
<B>권호명: < / B>2
제7장 제주도 유배시절(하)(59∼63세 : 1844∼1848년)
이양선의 출현 ... 417
영국 군함 사마랑호의 해심 측정 ... 419
불랑 패서 사건 ... 422
서구 열강에 대한 완당 인식의 한계 ... 423
완당의 회갑과 집안의 애·경사 ... 424
예산 화암사 상량문 ... 428
끊임없는 글씨 요구 ... 431
창덕궁 낙선재의 완당 현판들 ... 433
헌종대왕의 완당 글씨 요구 ... 435
완당의 지·필·묵 ... 438
완당의 종이 ... 441
필장 박혜백 ... 444
전각가 소산 오규일 ... 447
(배잠기공비)구륵본과 완당의 예서 ... 450
서한 시대 예서의 임모 ... 452
제주시절의 완당 글씨 ... 456
박규수의 추사체 성립론 ... 462
청명 선생의 추사체 성립론 ... 463
이동주 선생의 추사체 제주도 성립론 ... 466
완당의 제주 시 ... 467
이우성의 「추사와 중인층의 성령론」 ... 470
제주의 자연과 서정 ... 472
제주읍내 오현단을 다녀오고서 ... 474
한라산 등반과 귤중서옥 ... 477
수선화를 노래하며 ... 480
아들 상우에게 그려준 (시우란) ... 483
아들 상우의 (소동파 초상) ... 486
제주의 문맹과 교화 ... 488
강위의 방문 ... 493
제주 목사 장인식 ... 494
소치의 세번째 방문 ... 499
완당의 단전호흡 ... 504
허소치의 헌종대왕 배알 ... 506
방송(放送) ... 508
남해용왕에게 드리는 제문 ... 513
일로향각의 초의스님 ... 515
구암사의 백파스님 ... 518
창암 이삼만의 묘비를 찾아 ... 520
제8장 강상(江上)시절(64∼66세 : 1849∼1851년)
완당 생애의 시대구분 ... 527
강상에서 ... 528
박정진에게 보낸 편지 ... 530
완당 별호의 유래 ... 532
칠십이구초당의 유래 ... 534
집안의 궁핍과 강상의 서정 ... 537
황간현감의 도움 ... 537
백파의 「정혜결사문」에 부쳐 ... 541
혼허스님과 은해사의 추사 현판 ... 542
허소치에게 보낸 편지 ... 546
두릉의 여유당과 (보정산방) ... 550
권돈인의 옥적산방 ... 552
(계첩고)와 (조화접) ... 554
완원 선생의 죽음 ... 556
석파 이하응의 난초 학습 ... 557
강상에 온 초의스님 ... 560
서지환의 글씨 요구 ... 565
강상시절의 글씨 : (단연·죽로·시옥)(소창다명) ... 566
(난정병사첩)(학위유종) ... 569
(일금십연재)(토위단전) ... 574
(잔서완석루)(사서루) ... 576
추사체의 특질 : 괴(怪) ... 579
완당의 장인적 수련과 연찬 ... 583
완당·이재 합벽축 ... 585
(산심일장란)과 (향조암란) ... 588
『조선고적도보』의 완당 산수와 난초그림 ... 591
(불이선란) ... 594
다시 일어나는 정쟁 ... 598
제9장 북청 유배시절(66∼67세 : 1851∼1852년)
함관령을 넘으며 ... 607
(만세교를 지나며)와 (함관령을 지나며) ... 610
자작나무 굴피집에 살며 ... 613
동암 심희순에게 보낸 편지 ... 616
함경감사 침계 윤정현 ... 619
(진흥북수고경) ... 621
순흥으로 이배되는 권돈인 ... 625
독서와 유배객의 서정 ... 627
북청시절의 시 ... 628
북청의 벗과 제자들 ... 630
요선 유치전 ... 632
윤질부라는 인재 ... 634
완당의 민족적 자부심과 북방의식 ... 637
숙신의 돌화살촉 ... 639
해배 ... 641
과지초당으로 돌아가며 ... 643
제10장 과천시절(67∼71세 : 1852∼1856년)
주암리 돌무께의 참외밭 초당 ... 649
김구용의 과지초당 기행문 ... 651
사라진 김노경의 묘 ... 654
퇴촌의 권돈인 ... 657
두릉의 정학연과 정학유 ... 661
침계 윤정현과 북청의 윤질부 ... 664
석파 이하응의 난초그림 ... 666
초의스님이 보고 싶습니다 ... 670
완당과 스님들 ... 672
이당 조면호 ... 676
완당의 바둑과 술 ... 677
공부한다는 것의 행복 ... 681
연경학계 소식과 이상적 ... 683
제자들을 가르치며 ... 684
동암 심희순 ... 686
소당 김석준 ... 690
고람 전기 ... 695
금강안 ... 699
역매 오경석과 위창 오세창 ... 703
만년의 시와 서정 ... 705
완당의 열정과 관용 ... 710
노과시절의 졸(拙)과 허(虛) ... 712
(산숭해심)(유천희해) ... 715
곽유도비 병풍 ... 717
초의의 (명전) ... 719
(사야)(계산무진)(화법유장강만리) ... 721
동양 서예사에서 추사체의 위치 ... 726
과칠십 ... 727
(백파선사비문) 730
완당 글씨의 국제적 인기 ... 736
칠십일과 병중작 ... 738
유석암의 「청애당첩 뒤에 제하다」 ... 740
(산호가·비취병)(대팽두부) ... 742
(해붕대사 화상찬) ... 746
권돈인에게 보낸 장찰 ... 751
봉은사의 완당 ... 754
절필 : 봉은사 판전 ... 760
종장 완당의 서거와 사후의 평가
우봉 조희룡의 만사 ... 767
우선 이상적의 애도시 ... 769
권돈인의 화상찬과 추모시 ... 770
초의스님의 제문 ... 774
허소치의 묘소 참배와 김석준의 회고시 ... 775
『조선왕조실록』의 졸기 ... 777
맺는 글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 778
후기 ... 781
도판목록 ... 785
찾아보기 ...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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