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일러두기 ... 4
책머리에 ... 6
제1장 '떡잎'부터 남다른 어린 시절 ... 21
체 게바라와 호세 리잘 ... 22
'그림자' 같은 사나이 ... 27
밀양에서 열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 33
망국소년이 된 김원봉 ... 36
전홍표 교장과 평생동지 윤세주 만나 ... 39
독립운동의 묘판, 밀양 ... 42
평생 동지들 만나 의기투합하다 ... 46
제2장 조국독립의 꿈을 그리며 ... 51
무장투쟁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망명 ... 52
파리강화회의에 자객 보내 ... 56
비폭력 3.1운동소식 듣고 실망 ... 60
무장부대 대신 폭렬투쟁론 정립 ... 64
신흥무관학교 입교, 폭탄제조법 배워 ... 67
제3장 폭렬투쟁의 의열단 창단 ... 71
'의열단'이라는 고유명사 ... 72
혈연적 운명공동체 '의열단' ... 77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 ... 87
제4장 식민통치 기관을 파괴하라 ... 93
폭렬투쟁에 생명 걸어 ... 94
부산경찰서 폭파 작전 ... 99
밀양경찰서 폭파 작전 ... 101
조선총독부 폭파 작전 ... 103
자금 조달과 폭탄 반입의 어려움 ... 106
아나키즘에 매료되기도 ... 110
아나키스트 유자명과의 만남 ... 114
의열단, 임시정부와는 거리를 두다 ... 117
소련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 지원받아 ... 122
일본 육군대장 처단 시도 ... 124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 128
<의열단선언>은 어떤 내용인가 ... 133
의열단 총회를 통해 결의 다짐 ... 150
'불멸의 문헌'에 대한 역사적 평가 ... 152
제5장 황포군관학교 입교 전후 ... 157
의열단의 시련과 세력 확장 ... 158
임시정부에 실망한 세력 의열단 가담 ... 161
의열투쟁자금 마련에 고심 ... 165
김지섭의 이중교 투탄 의거 ... 168
확고한 민족주의 신념 ... 172
황포군관학교에 입교 ... 177
유오한국혁명동지회 결성 ... 181
군관학교에서 얻은 인적 자산 ... 186
김성숙의 김원봉 회고담 ... 188
제6장 중국혁명전선에 서다 ... 193
의열단 개조운동 ... 194
조선민족혁명당으로 발전 ... 197
무창혁명청년회 결성 ... 201
장개석의 북벌에 참전 ... 205
살육의 현장을 뒤로하고 상해로 ... 209
남창봉기에 직접 뛰어들어 ... 212
광주봉기에는 참가하지 않아 ... 216
시련을 딛고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발돋움 ... 220
제7장 독립운동진영 통합운동에 앞장서다 ... 223
공산주의 이론가 안광천과의 만남 ... 224
상해에서 새 활로 모색 ... 228
대표자대회 열어 강령ㆍ슬로건 채택 ... 232
창립 9주년과 3.1운동 10주년 성명 ... 236
레닌주의정치학교 개설 ... 240
사회주의사상에 깊이 빠져들어 ... 246
제8장 독립군전사들의 용광로 조선혁명간부학교 ... 251
세계 대공황과 파시즘 체제 ... 252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우기까지 ... 254
'남의사'통해 중국정부로부터 재정 지원 받아 ... 257
황포군관학교 동기생들의 협력 ... 262
남경 교외 탕산에 훈련소 개설 ... 266
조선혁명간부학교 운영에 열정을 바쳐 ... 273
치열한 혁명계급론 분석 ... 280
백범 김구의 격려 방문 ... 287
졸업생들, 특수임무 띠고 적 후방으로 ... 290
혁명음악가 정율성 배출 ... 293
독립운동진영의 지도자로 우뚝 서다 ... 297
"왜노 몰아내는 조선독립의 역군이 돼라" ... 300
제9장 사랑과 혁명의 합주곡 ... 303
북경에서 만난 여성 혁명가 박차정 ... 304
젊은 혁명가들의 사랑과 조국해방투쟁 ... 308
노신과 허광평의 사랑과 혁명운동 ... 312
남경조선부녀회 조직, 운영지도 ... 316
불꽃처럼 살다간 소피아 코발렙스카야처럼 ... 324
제10장 민족혁명당 총서기에 취임 ... 329
국제정세의 변화를 지켜보며 통합정당을 지도 ... 330
단일대당 운동에 임시정부는 불참 ... 333
민족ㆍ민주혁명이념 제시 ... 337
당권 장악했으나 이청천 계열 이탈 ... 350
《민족혁명당보》 발행에 심혈을 기울여 ... 354
민족혁명당 창당의 '실천적 의의' ... 359
중일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 ... 371
제11장 조선의용대 창설, 총대장이 되다 ... 375
중일전쟁, 한국독립 절호의 기회 ... 376
조선의용대 창설 ... 381
기독청년회관에서 결성식 가져 ... 384
의용대원들의 회고 ... 386
핵심대원들로 의용대 편제 ... 389
일본인 반전운동가들과 연계투쟁 ... 392
한국광복군 창설에 자극제 역할 ... 398
강도 일본을 타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 ... 402
기관지 《조선의용대통신》 발행 ... 404
후방지역 전지공작에 투입 ... 406
중국 문인 곽말약과 김성숙의 회고 ... 409
의용대원 김학철의 회고 ... 413
의용대원 유자명의 회고 ... 415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결성 ... 419
제12장 조선의용대의 활동과 화북이동 전후 ... 421
조선의용대의 선전공작과 유격전 ... 422
"모든 반일 역량을 단결시키자" ... 425
다양한 대적선전활동 전개 ... 432
일제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 ... 435
일본 반전단체의 축하 메시지 ... 439
조선의용대의 미래 활동 지침 ... 442
조선의용대 주력 화북으로 이동 ... 448
중국공산당, 김원봉의 화북행 차단 ... 452
중국인 사마로의 증언 ... 455
"망명자 가족 생계유지를 위해" ... 458
<연안송>을 지은 정율성은 조선의용대원 ... 461
제13장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취임 ... 465
국권침탈기 무력항전의 전통 ... 466
한국광복군의 결성과 성격 ... 470
한국광복군의 역할과 사명 ... 475
제14장 좌절과 민족해방의 중경 시절 ... 483
잔류대원을 이끌고 중경으로 이동 ... 484
장개석 정부의 통합 압력 ... 489
임시정부에 참여하기까지의 좌우 갈등 ... 495
"배운 것 적어도 도량 큰 인물" ... 502
소절에 구애받지 않는 혁명가의 풍모 ... 506
이미정부에서 소외당해 ... 510
3.1 소년단장 최동선과 재혼 ... 517
제15장 광복의 깃발 들고 27년만에 환국 ... 521
일제 패망의 날, 중경 ... 522
제2진으로 12월 초 환국 ... 525
일제 패망과 조국독립의 의미 ... 529
환국 순위 양보 ... 533
소용돌이치는 정국의 한복판에서 ... 536
비상국민회의 탈퇴 선언 ... 542
임시정부와 결별, 민전의장 맡아 ... 545
28년만의 귀향, 대대적인 환영받아 ... 549
친일경찰에 붙잡혀 수모 당해 ... 552
3일간 통곡, 그 눈물의 사연 ... 555
친일파들이 활개치는 기막힌 '해방조국' ... 558
이현상의 글, <혈투의 30여 성상> ... 562
제16장 단정 반대와 월북 그리고 의문의 죽음 ... 565
일관된 통일정부수립 노선 ... 566
테러위협으로 인한 긴장된 생활 ... 569
4월 9일 북한으로 가다 ... 572
월북 동기와 배경 ... 576
북한정권수립에 기여, 국가검열상 취임 ... 581
월북, 납북 독립운동가들과 만나 ... 585
재북 독립운동가들과 평화통일기구 만들어 ... 590
풀리지 않는 '퇴장'의 진실 ... 596
그림자는 사라져도 존재는 남아 ... 600
혁명시인 마야꼽스끼처럼 ... 604
조국은 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 606
부록 ... 609
부록1 민족혁명당 당의ㆍ당강ㆍ정책ㆍ당장 ... 610
부록2 우리 운동의 새 출발과 민족혁명당의 창립 ... 621
김원봉 연보 ... 634
찾아보기 ...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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